[직설(直說)] 인문학 위기 극복은 고등교육 투자와 함께
페이지 정보
조회 545회 작성일 23-11-06 16:45
본문
강성호 한국인문사회연구소협의회 회장(순천대 인문학술원장)
강성호 한국인문사회연구소협의회 회장(순천대 인문학술원장)‘인문학의 위기’는 더 이상 ‘구호’가 아니라 ‘현실’이다. 인문학 위기는 날로 심화되고 있다. 지난달 28일 교육부 자료에 따르면 지난 3년 동안 서울지역에서 17개 인문사회계열학과가 없어지고 23개 공학계열 학과가 신설됐다. 지역에서도 인문계열 학과가 폐과되거나 통폐합되고 있다.
지난 10년 동안 인문학이 빠르게 축소되고 있다. 2020년 국정감사 당시 지적사항을 보면 대학에서 인문계열 학과 수와 입학정원 수가 2012년 976개 학과 4만 6108명에서 2020년 828개 학과 3만 7352명으로 학과 수는 15% 정도, 학생 수는 19% 정도 축소됐다.
인문학 위기는 세계적 현상이다. 현재 현실사회주의 몰락으로 세계 전체가 자본주의화됐고, 전세계적 재편과정에서 자본주의 시장의 국가별, 분야별 자본의 집중과 경쟁이 심화되고 있다. 또한 AI 중심 4차 산업혁명 시기에 기술과학중심주의가 더욱 강화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의 인문학 위기는 대학재정위기, 학령인구감소, 교육부의 정량적 대학평가제도 등으로 인해 더 심화되고 있다. 한국의 고등교육투자는 OECD 평균 국가 평균 1.1%에 비해 0.6%에 불과해서 OECD국가에서 최하위를 차지하고 있다. 2022년 US뉴스&리포트가 한국의 국력(Power)을 세계 6위로 평가한 데에 비하면 정말 부끄러운 수준이다. 대학등록금마저 지난 14년 동안 상당부분 동결되면서 인문사회분야 지원이 우선적으로 축소됐다. 정량적 대학평가에서 학생충원률, 졸업생 취업률 같은 정량지표에 불리한 인문학분야는 구조조정의 대상이 됐다.
인문학은 더 이상 투자하고 육성할 필요가 없는 분야인가? 그렇지는 않다. 코로나19와 기후 위기 같은 인류공동체 생존 위기 극복에 인문 정신에 기초한 공동체 가치의 개발과 확산이 필요하다. 전세계적인 자본주의 경쟁과 재편이 격화되고 있는 상황 속에서 다양성의 존중, 사회적 약자 배려, 공공성 중시, 상생과 협력을 통한 연대 강화에서 인문학이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으로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올라선 한국이 지속 성장하기 위해서는 창의적인 지식과 기술원천 개발이 필요하다. 경험적인 접근을 주로 하는 자연과학과 사회과학에 비해, 인문학은 분석적·비판적·사변적 방법을 폭넓게 사용한다. 따라서 창의력의 원천인 인문학은 선진국 한국에서 더욱 중시되고 육성돼야 할 필요가 있다.
인문학은 다양한 학제 간 융합을 통해 한국 경제발전에 실질적으로 기여할 수 있다. 한국영화 <기생충>, <오징어게임>,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등이 세계영화 시장을 휩쓸고 있다. 성공의 비밀은 ‘딱지치기’, ‘달고나 뽑기’, ‘오징어놀이’ 등 한국 문화의 원천 콘텐츠가 넷플릭스라는 ‘디지털 스토리텔링 플랫폼’과 잘 융합된 데에 있다.
요즘 인공지능(AI)은 현대 산업 및 사회의 모든 분야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인공지능 시기에 전통적인 인문학 분야의 하나인 언어학이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구글, 야후, 아마존 등 미국의 세계적인 기업들이 언어학 관련 고급인재들을 채용하고 있다. 이에 미국 대학들도 대학원 박사과정에서 언어학 인재들을 키우는 데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언어학과로 유명한 MIT, 하버드대, 스탠포드대, 버클리대 등이 풀 펀딩으로 세계 곳곳에서 우수한 박사과정 학생 등을 모집하고 있다. 한 대학교당 언어학과 대학원생들의 등록금, 생활비, 의료보험비 등 지원규모만 200~300만불 정도로 추산된다. 미국 실리콘밸리가 세계적 경쟁력을 가지게 된 것도 버클리대와 스탠포드대 등이 배후에서 언어학이나 컴퓨터 공학분야 우수 인재를 키웠기 때문이다. 이러한 미국사례를 보면, 역설적으로 인문학에 선제적으로 투자하는 국가가 세계를 선도하는 중심국가로 발전할 수 있다.
최근 한국의 방위산업이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폴란드에만 10조 이상의 전차, 자주포, 경전투기 등을 수출하면서 올해 세계 방산수출 시장에서 4위나 5위를 차지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한국 방위산업은 대표적인 융복합 분야의 하나이다. 기계공학, 정보 및 전자공학, 항공우주공학, 경영학, 정치외교학, 역사학, 심리학 등이 융복합돼 있다. 전차나 자주포의 심장인 엔진을 생산하는 기계공학, 무기간 데이터 통신 네트워크 등을 개발하는 정보공학, 세계방산 시장 수출전략을 담당하는 경영 마켓팅, 한국형 군사전략 수립을 위한 전쟁사연구 등이 융합돼 있다. 전쟁사와 관련해 순천대학교 인문학술원은 레드원 등 전쟁 AI 로봇 벤처 기업과 MOU를 맺어 전쟁사 연구성과를 공유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인문학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먼저 그동안 한국대학의 자율적 발전에 장애가 되어온 정량적 대학평가제도를 개선하거나 폐지할 필요가 있다. 그동안 3차례에 걸친 대학역량평가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대학의 자율적이고 창의적인 대학운영이 어려움을 겪었다. 특히 인문학분야가 평가대비를 위한 구조조정 대상학과로 몰려 크게 축소됐다.
한국의 인문학과 대학교육이 발전하려면 많은 예산이 필요하다. 현재 교육부의 100조 원이 넘는 예산에서 고등교육예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12조 원 정도에 불과하다. 이 중에서 국가장학금과 경직성 예산을 빼면 겨우 2조를 넘는 수준이다. 미국 하버드대학교 펀드는 규모가 2022년 현재 532억 달러(76조 6080억 원)이고, 하버드대학교 운영자금으로 20억 달러(약 2조 8794억 원)을 지원했다고 한다. 한국고등교육 지원예산 전체가 미국 한 대학교의 자체 펀드 지원예산 정도에 불과한 셈이다. 이런 상황을 구조적으로 바꾸지 않으면 한국 고등교육과 인문학의 미래는 어둡다.
작년에 국회에서 고등교육재정교부금법이 제출됐으나 통과되지 못했다. 안타까운 일이다. 지난 9월에 제한적이기는 하지만 ‘고등·평생교육지원특별회계법’이 국회에 제출됐다. 3조 6000억 원 규모는 세계 6위 수준의 한국의 국력과 국제적 위상에 비춰볼 때 여전히 너무 적다. 그럼에도 한국고등학교의 조속한 정상화와 선진국 한국의 지속적 발전을 위해 첫걸음을 내딛어야 한다. 국가 발전에 여야가 있을 수 없다. 여야, 중앙과 지방, 학계와 사회가 모두 힘을 모아 고등교육예산을 확보하는 데 힘을 모아야 할 때다.
- 이전글기술 만으로 ‘거대 위기’ 해결할 수 있을까 23.11.06
- 다음글한국인문사회연구소협의회, 고등·평생교육지원특별회계법안 지지 23.11.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