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설(直說)] ‘잃어버릴 30년’ 대비하는 인문사회 발전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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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인사협
조회 53회 작성일 24-12-10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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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성호 한국인문사회연구소협의회 회장(국립순천대 인문학술원장)
강성호 한국인문사회연구소협의회 회장(국립순천대 인문학술원장)
한국사회와 국가는 전략적 좌표없이 표류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 압승이나 그 이후에 대한 대처를 둘러싸고 정부나 민간 모두 우왕좌왕하고 있다. 미·중 분쟁에 대한 분석이나 대처도 주먹구구 식이다.
왜 이런 일들이 주기적으로 발생하고 있는가? 2024년도 2분기 90.6%에 달하는 대외의존도를 지닌 한국에서 한반도를 둘러싼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 주요 강대국의 중장기 전략을 파악할 수 있는 연구소나 싱크탱크가 제대로 없기 때문이다.
국책 연구기관들은 내부의 관료적 제약으로 단기적, 분절적, 고립적 정책 연구를 뛰어넘기 어렵다. 1990년대 이후 국책기관들이 부족한 전문성을 확보하기 위해 해외지역 연구를 하는 대학 부설 연구소들의 역할이 커졌다.
2024년 현재 한국연구재단에 등록된 해외지역 연구를 하고 있는 대학 부설 연구소들은 약 177개다. 중국이 약 56개소(31%), 일본 약 30개소, 미국 약 11개 연구소(6.2%), 유럽 관련 연구소 약 21개 연구소(11.8%) 등이다. 그러나 이중 교육부와 한국연구재단 지원을 받는 해외지역 연구소는 관련 연구소는 매년 2~4개 정도에 불과하다. 그나마 해외지역 연구를 지원하는 ‘전략적 지역연구형’ 연구소 사업도 2027년에 끝날 예정인 상태다.
매년 3억여 원 지원받아 3~4명 정도의 전임 연구교수로 운영되는 소규모의 대학 부설 연구소로 주변 주요 강대국들에 대한 중장기적 관점에서 체계적 연구를 하기 어렵다. 당연히 정부 기관, 국회, 기업, 언론들이 중장기적인 전략과 관련된 신뢰할 만한 기본 정책 자료 확보하기 힘들게 된다.
미·중 분쟁이 격화되어가는 동아시아 상황에서 한국 경제가 ‘구조적 장기 침체’가 시작됐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그동안 한국을 먹여 살려온 철강, 화학, 자동차, 조선 등이 빠른 속도로 중국에 추월당하고 있다. 포항제철 공장들이 연이어 문을 닫고 있다. 롯데그룹의 존망을 좌우할 수도 있는 롯데 케미칼의 거대 적자는 롯데그룹만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화학산업 전체의 존립이 걸린 문제가 되고 있다.
중장기 국가발전 전략 위해 ‘메가 질문’이 필요할 때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이 ‘잃어버릴 30년’ 일본을 닮아가고 있다는 경고가 나온다. 한국은 일본처럼 ‘잃어버린 30년’으로 들어가고 있는가? 정말 일본은 ‘잃어버린 30년’이었나? 중국은 미·중 분쟁에서 생존할 수 있나? 한국은 이러한 메가 질문에 왜 답변하기 어려운가? AI나 이공분야 R&D 투자만으로 이러한 메가 질문에 답변할 수 있나?
중국은 ‘신냉전’ 시기에 국제적 동맹 강화, 내수 시장 확대, 자립적 과학기술체계 구축을 위한 R&D 투자 확대 등 독자 발전전략을 세워 대처하고 있다. 중국사회과학원을 비롯한 인문사회연구기관들이 국가의 전략적 정책연구들을 뒷받침하고 있다. 미국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민간 싱크 탱크들이 이런 역할을 하고 있다. 이에 비해 전략적 정책연구를 제대로 수행하는 기관을 한국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26개 인문사회 분야 국책연구기관을 아우르고 있는 경제·인문사회연구회가 최근에야 국가전략 정책연구를 시작하고 있는 정도다. 따라서 경제발전, 과학기술, 외교 통상, 국방, 국가 안보 등을 포괄해서 중장기 국가발전 전략을 담당할 기구의 공백을 시급하게 메워야 할 필요가 있다.
20세기 들어 전쟁의 양상은 총력전 체제로 전환됐다. 1, 2차 세계 대전 같은 총력전 시기에는 전방과 후방이 하나로 묶어 전쟁승리를 위해 총력을 기울인다. 총력전 시기에 전쟁에 승리하기 위해서는 전쟁 전략, 전술, 무기체계, 군수, 민간경제, 정보, 선전 등 다양한 부분을 체계적으로 동원하는 작전계획을 짜는 참모부의 역할이 커진다. 미·중 분쟁 격화로 나타나는 ‘신냉전’ 시기에 한국이 독자적으로 생존하고 발전할 수 있는 데 필요한 ‘작전 전략’을 짤 수 있는 ‘참모부’가 필요하다. 다시 말해 ‘잃어버릴 30년’을 막기 위한 한국의 독자적 발전전략을 연구해야할 시기다.
한국이 독자적으로 발전해나가는 데 있어 R&D 투자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런 점에서 작년에 이공분야 R&D가 축소된 점은 유감스러운 일이었다. 올해 국회에 제출된 정부안에서 이공분야 R&D가 2조 9000억 원 증가돼 기존 수준으로 되돌아간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인문사회 분야는 그 만분의 1에 불과한 2억 7000만 원 증액에 그쳤다. 약 30조에 달하는 공공 R&D 중에서, 인문사회 분야 순수 학문지원 예산은 약 1%에 불과한 2997억 원이다. 이에 비해 전체 공공 R&D에서 인문사회 분야가 차지하는 비율이 일본은 13.1%, 미국이 10.3%, 독일이 8.3%, 영국이 5.1%를 차지하고 있다. 한국은 이웃 일본의 10분의 1에 불과한 실정이다. 한국도 주요 경쟁국 수준으로 인문사회 분야의 R&D 지원 수준을 높여야 한다.
국가전략 개발에 필요한 인문사회 분야 정책 지원 이뤄져야
한국의 인문사회 분야도 한국의 중장기 발전전략을 제시하려고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2022년부터 3년 동안 한국인문사회연구소협의회는 저출산 고령화, 지방 소멸, 사회 양극화, 글로벌 가버넌스, 팬데믹 등 같은 ‘메가 아젠다’들을 ‘인문사회 분야 메가 프로젝트’들을 통해 해결할 것을 주장해왔다.
국가의 주요 난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전략적 연구가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인문사회 분야에서도 ‘누리호’ 같은 거대 연구 프로젝트가 필요하다. 연간 약 5600여억 원 정도의 국가 예산을 투자해 국가의 주요 이슈들을 연구하는 ‘프랑스 고등사회과학원’ 산하 ‘인문사회연구소사업’의 사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지난 11월 5일 국회에서 열린 ‘제5차 인문사회 분야 메가프로젝트 정책토론회’에서 한국인문사회연구소협의회는 현시기 한국 사회가 해결해야 할 제안 주요 아젠다 12개와 세부 아젠다 36여개를 제안했다. 학술토론회를 공동으로 주최한 조승래 의원은 “(첨단기술) 전환기에 인문사회 분야에서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 국가나 전체 인류에 필요한 일”이라고 밝혔다. 조정훈 의원도 메가 프로젝트가 “사회 전반에 걸친 정책 수립과 실질적 변화를 이끌어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2025년 정부 예산에 인문사회 분야 메가 프로젝트를 시범적으로 실행할 수 있는 예산이 포함되어, 내년부터 인문사회 분야도 한국의 주요 난제들을 해결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정부뿐만 아니라 국회와 재계가 힘을 모아 이공분야 첨단산업 육성하듯 국가전략 개발에 필요한 인문사회 분야를 정책적으로 지원해나가야 한다.
출처 : 한국대학신문 - 411개 대학을 연결하는 '힘'(https://news.un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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